Title.김어준의 [닥치고 정치] 읽은 후기
 

 

이 책을 집을 때엔 좀 많이 망설였습니다. 이거 얼마못가 버려도 될 책이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말이죠. 돈없는 학생 시절의 궁상인데, 이게 그대로 나이를 먹었어도 남았습니다. 아마 제가 고민하는 사이에 세 명이 연달아 책을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하지만 않았어도 그냥 망설이다 집에 왔을 겁니다.

책의 내용은 김어준 자신의 인터뷰를 그대로 녹취한 후 활자화한 스타일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내용은 중언부언 식이 되지만, 김어준 특유의 어법으로 정말이지 시원시원하게 읽히게 됩니다. (물론 인터뷰어인 지승호가 적절하게 내용들을 정렬해주었을 겁니다만) 김어준과 술자리에서 술 한잔 꺾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듣는 식이랄까요. 제가 아는 이런 류의 (정치학이나 그 비슷한 칼럼류) 책 중에서 이 책처럼 확실한 페이지 터너는 없을 겁니다. 정말 술술 읽힌다는게 이 책의 최대 장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들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정치학이나 경제학의 개념을 나름 이렇게 저렇게 설명하는 유시민의 '지식소매형' 저작들과는 달리 김어준은 무학의 통류라는 그의 주장대로 (요즘 이 표현을 민다더군요) 그냥 자기 X 꼴리는 대로 좌파와 우파를 구분하고 설명하면서 책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현존하는 정치인들의 비평을 하고 앞으로의 정치 지형을 예상 하는 거죠. 검찰같은 조직도 예외는 아니고요. 듣다보면 굉장히 그럴듯하고 나름의 설득력을 가진 얘기들이라 수긍이 됩니다.

그게 말이 되냐구요? 저 개인적으론 최장집 교수님같은 분의 저술을 보다 김어준의 저 '말같지도 않은' 말을 들으니 처음에는 당황하게 되더군요. 그런데 그게 그 자체로 이해가 됩니다. 이 사람은 그냥 무슨 동물의 왕국 감상을 얘기하듯 자기가 느끼고 보는대로 정치판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게 먹히고요. -_-;;

정치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하등 도움이 될 책이 아닙니다. 정치학에 입문하려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일테고요. 하지만 이 책의 효용은 그런데 있지 않습니다. 스무살까지 미국에서 살다와 한국을 잘모르는 재미교포가 읽으면 어디 술자리 가서 얼치기 정치평론가 흉내 낼 정도의 정보를 이렇게 술술 풀어서 잘 설명해주는 책도 드물 겁니다. 개인적으론 이 책의 최대 효용성은 이 책을 보고 뉴스의 정치면을 보면 재미가 남다를 것이다.. 라는데 있다고 여깁니다.

다시 한번 부언합니다. 저는 이 책은 정치학 컬럼이나 비평같은 사회과학 서적이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시튼의 동물기]와 비슷한 류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어니스트 톰슨 시튼이 쓴 [동물기]를 감동깊게 읽지만, 그 책이 보편적인 동물들의 행태나 사고를 완벽하게 설명한다고 보지는 않을 겁니다. 대신 특정 동물들의 행동양식이나 습성을 자세히 설명하고 스토리를 읽어내는 그의 (예를 들면 늑대왕 로보와 그의 아내 블랑카 같은...) 글을 보며 어떤 화학적인 반응을 보이겠지요. 저의 경우에는 김어준이 고인이 된 어떤 정치인의 얘기를 할 때마다 였습니다.

정리, 재미있습니다. 대중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애초 이 책 자체가 바로 그런 프로파간다의 목적으로 쓰인 책이니, 그에 맞게 아주 제대로 쓰인 책이라 하겠습니다.

 

평소 정치에 관심 없는 게 쿨한 건 줄아는 사람들에게,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사람들에게, 좌우 개념 안 잡히는 사람들에게, 생활 스트레스의 근원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정당들 행태가 이해 안 가는 사람들에게, 이번 대선이 아주 막막한 사람들에게, 그래서 정치를 멀리하는 모두에게 이번만은 닥치고 정치, 를 외치고 싶거든.(웃음) 시국이 아주 엄중하거든, 아주.(웃음)

- p. 30
by deniro | 2011/10/01 01:40 | 낙서장 | 트랙백 | 핑백(1) | 덧글(1)
Title.이태준 - 고아의 추억

이태준의 수필집을 읽다 잠깐 울었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게 예전같지 않은 법.

고아의 추억
  - 어렴풋한 시절



해삼위(해삼위; 블라디보스토크)의 해변 조선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 살던 어느 한적한 농촌이었다. 해삼위에 가서 반년 동안이나 치료하시던 아버지가 조그만 목선을 타고 돌아오셨다. 뻔쩍뻔쩍하는 양복을 입으셨으나 선부(선부)에게 업혀 상륙하시던 아버지, 단장을 의지하고 혼자 서시자


"이리 온 태준아."


하고 부르시었다. 나는 낯선 손님만 같아서 어머니의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리며 돌아섰다.


"자식이 밸을 안 주는 걸 보니 정말 죽으려나 보다!"


하시고 아버지는 다시 선부에게 업히시었다.


나는 그때 여섯 살, 그 뒤로 며칠 만인지 몇 달 만인지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것을 본 생각은 나지 않고 어머님이 목쉰 음성으로 여러 인부들을 지휘하시며 아버지의 산소를 묻던 광경만 어렴풋이 기억된다. 그때는 가을인 듯 역시 철나지 않은 누님은 나를 데리고 개암을 따먹으려고 없어지곤 하여 어머니는 이따금 우리를 찾으시기에도 바쁘시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유골이나마 이역에 묻고서는 편안히 누워보신 저녁이 없으신 듯 석 달이 못 되어 어머니는 미처 풀도 푸르지 못한 아버지의 산소를 헐으셨다. 흙이 좀 묻었을 뿐인 관을 조그만 청어 배에 싣고 고향 땅에 들어서 첫 항구를 찾은 것이 배기미, 지금 함경북도 부령 땅인 이진(이진)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관을 모새땅이나마 내 고향이라고 이곳에 다시 묻으시었다. 그리고 가끔 내 손목을 이끌고 가시어 내가 못 보는 체하면 돌아서 눈물을 씻으시곤 하였다. 해변이라 파도 소리가 어느 때나 쉬지 않았다. 내 귀가 파도 소리를 슬픈 소리로 기억한 것은 이때에 듣던 파도 소리였다.


한번은 어머니는 나만을 아니라 몇 사람의 일꾼을 데리고 아버지 산소로 가시더니 또 봉분을 하시었다. 그때는 관널이 썩어 있었다. 일꾼들도 얼굴을 돌이키나 어머니는 팔을 걷으시고 손수 뼈를 추리시어 물에 그기까지 하시더니 백지에 싸고싸고 묶고묶고 하여 그때까지 따라다니던 가복(가복) '정관이'에게 지워 철원 선영으로 보내시었다.



그때의 이진서 철원은 아득한 길이었다. 청진까지 나오면 거기서 원산까지는 화륜선(화륜선)이 있었으나 물길이 미덥지 못하여 육로로만 나가게 하신지라 떠난 지 석 달 뒤에야 선영에 봉안되었다는 기별이 났었다. 그러나 한 짐을 벗으신 듯한 어머니 이번엔 벗을 수 없는 병을 지고 누우시었다.



북국의 겨울 함박눈이 쏟아지던 밤이었다. 여러 날 만에 이상하게도 소강(소강)을 얻으시어 이날 저녁때에는 밥을 다 반합이나 잡수시었다. 우둔한 자식들은 병을 놓으시는 줄만 알고 좋아라 하고 밖에 나와 눈장난에만 팔리고 말았다. 문병을 왔던 할머니들의 급히 부르는 소리에야 뛰어 들어가보니 어허! 어머니는 그린 듯이 누워 계신데 만져보는 데마다 얼음 같으시었다.


제일 크다는 자식 누이가 열두 살, 내가 아홉 살, 누이동생이 세 살, 이것들이 앞에 있었기로 무엇 했으리오. 감지 못하시는 눈에 더욱 감시만 되었을 것이로되 차츰 철나며 생각하니 한 됨이 큰 것이다.



그 뒤 24년 꿈이라도 여러 해 전인 것처럼 어렴풋하다. 어머니의 무덤은 아직도 그 파도 소리 슬픈 웅기만 바닷가에 놓여 있다.


'그 무덤은 정말 나의 어머니일까?'


이런 의심을 생각하리만치 전설처럼 아득해졌다.



어려서는 부모님이 그립다기보다 아쉽곤 하였다. 옷이 더러워졌을 때 무엇이 먹고 싶을 때 그리고 무슨 영일(영일)이 돌아올 때는 더욱 못 견디게 아쉬웠다. 사탕처럼 비단옷처럼 따뜻한 아랫목처럼 아쉬운 부모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피부에서보다 마음으로 그리워지는 부모님이시다. 배고프지 않고 등 춥지 않되 오히려 즐거운 때일수록 문득문득 생각나는 이들이 그들이시다. 어떤 때는 고요한 밤 지는 녘에 종교와 같이 가만히 그리워지는 분들이 그들이시다.



해마다 벼르기는 하지만 올 여름에는 꼭 어머지 산소에 다녀오리라.


- 이태준, [조광] 1936년 1월.



 

by deniro | 2011/05/02 09:57 | 낙서장 | 트랙백 | 덧글(0)
Title.4.3 이야기

군 생활 시절을 제외하고, 제가 경기 이남의 어딘가에 가봤던 기억은 손꼽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주는 좀 특이한 편인데, 저는 이 곳을 두 번이나 방문했습니다. 첫 방문은 고등학생 시절의 수학여행이었고, 두 번째가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후의 관광이었죠.

 

제주도는 이래저래 볼 것들이 참 많습니다. 같은 대한민국의 영역이라 묶기에는 좀 이국적인데, 아마도 이런 묘한 느낌과 시원한 바닷가 풍광등이 어우러져 제주의 볼거리를 만들어 내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정말 즐기면서 왔습니다. 오랜만에 머리를 식힐 수 있었던 좋은 시간들이었어요. 그리고 나름 공부도 되는 여행이었습니다. 아마 금능석물원이 아니었으면 그럴 일이 없었을 텐데, 그런 면에서 석물원을 꾸며주신 석공장인 장공익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그 '공부'... 제가 한 공부로 이 글을 써 볼까 합니다.

 

 

......

 

 

금능석물원이란 곳이 있습니다.


제주 여행이라고는 했지만, 애초에 딱히 무슨 목적을 정해 놓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주 공항에 내려서 차를 빌리고는 그대로 지도상의 시계 반대방향을 며칠간 돌고, 그 다음에는 다시 며칠동안 내륙쪽을 돌자.. 라는 게 이 여행의 목적이었죠. -_-;

그래서 내비게이터에 금능석물원이란 곳이 나왔을 때에도 그저 심드렁 했습니다. 그때가 10월이었는데, 정말 을씨년스럽고 한산했습니다. 주차장에 우리 차만 덩그러니... =_=;; 그래서, '아 이거 아닌가..' 하는 심정으로 벌벌떨며 입장했습니다.

그런데 석물원 안은 기대와 정반대여서 너무 좋았습니다. '아.. 돌멩이 갖다 별 짓을 다해놨네.' 로 시작한 감상은 곧 탄성과 찬탄으로 변했습니다. 사람들이 없으니 그 또한 한적해서 좋았구요. 개인적으로는 '저승길(=_=)'을 형상화한 돌벽길이 가장 좋았습니다. 하지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따로 있었죠.

그것은 돌로 만든 어느 마을이었습니다.
서양에서 정원 쪽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놈(gnome) 인형들로 자기네 집 앞을 알록달록 꾸며 놓은 것처럼. 차이가 있다면 석물원의 마을은 아예 마을 전체를 돌로 재현해 놓았다는 점이겠죠. 그리고 마을 앞에는 이런 비석이 있습니다.



과거에 사라진 한 마을이라.
예, 제 궁금증의 시작은 이 비석에서였습니다. 4.3 이란 것이 과연 어떻게 된거길래 이런 표현이 나왔는지 말입니다.



......



2000년 1월 제정, 공포된 제주4.3특별법 제2조는 4.3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해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 1. 47년 3월 1일

해방된지 이제 2년도 채 안된 시점에서, 제주도 분위기는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흉년 탓에 먹고 살기가 기본적으로 힘들었고, 콜레라가 만연해서 수백 명이 죽어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좁은 섬에서 43년에 으시대고 주먹을 휘두르던 작자들은 48년에도 그대로 그 자리에서 여전히 주민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3월 1일 발포 사건이 납니다. 시위을 진압하던 과정에서 경찰측이 발포를 해 10여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이었습니다. 이 일로 3월 10일 총파업이 일어나게 됩니다. 재미있은 것은 이 파업이 일반 민간인들 뿐 아니라, 공무원까지 참여한 파업이었다는 점입니다. 섬 전체의 분위기가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제주도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육지것'들이 내려 옵니다. 일단 제주도 출신의 공무원들을 싹~ 바꾸고, 타지 출신의 경찰들로 병력을 증원합니다. 그리고 '서북 청년단' 이 내려옵니다.

친절하게도 외국인도 알아보기 쉽게 영어로 쓴 저 행태하며, 출범당시 이들 상당수가 믿고 있던 특정 종교(ㅋㅋㅋㅋ) 하며, 왠지 모르게 참 낯익은 집단입니다만, 당시의 저 조직은 준군사조직(paramilitary forces)에 가까웠기에 지금처럼 대놓고 웃으며 깔 수도 없고 까서도 안되는 조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 1년 동안 2,500명에 달하는 체포, 구금, 고문 풀코스 정식 (알려진 고문치사만 3건).

내가 말이지, 예전에 시위 좀 해봐서 아는데... 하는 분이 좀 계시는데, 이건 박통-전통 시대에도 없던 일입니다. 그 좁고 인구도 얼마 안되는 섬에서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는가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던 거죠. 어쨌든 저들은 정말이지 능력(?) 하나는 끝내주는 집단이었습니다. 저만큼 털어내는데 그 중 '진짜 빨갱이'가 없겠습니까? =_=;; 이들 덕분에 일제시대때부터 열심히 뛰던 경찰들은 좀 더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짜 빨갱이들(남로당)은 정말로 불리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 2. 48년 4월 3일

새벽 2시에 약 350여명의 무장대가 제주 각지의 12개 경찰지서를 공격합니다. 상황은 이때부터 진심으로 심각해졌고, 미 군정에서는 제주 경비대를 투입합니다.

이 때 진압을 맡은 제주 경비대 9연대의 김익렬 중령은 자신의 가족을 볼모로 내걸고 무장대와의 협상을 진행합니다.
제주 출신의 송지나가 극본을 쓴 [여명의 눈동자]에는 당시의 모습을 주인공 장하림의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벌판에서 김익렬은 군인으로서의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지만, 현실에 막혀 답답해하는 전형적인 '좋은' 군인의 모습으로 등장하죠. [여명의 눈동자] 하림의 테마(← 이건 표절이 아니라능..)가 제주의 모습과 함께 너무나 아름다웠던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도 있습니다.

<9연대장 김익렬>

                                                      고은 作


제주도 국방경비대 제9연대는 귀양살이 연대였다
아무도 오지 않으려는 곳
제주도
이곳에 김익렬이 왔다
일본군 소위 경력
제주도에서
그의 야전생활이 시작되었다

 

육지에서 건너온 경찰
청년단
군인
세 힘이 제주도를 밟았다


민심은 산으로 향했다
경찰 발포로
민심이 일어났다


제주도 지사도
제주도 경찰서장도
제주도 유지도
산과의 협상을 방기했다


김익렬 연대장이 나섰다
어머니와 아내
두살 난 아들을 볼모로 제안했다
그는 유서를 써두었다
어머니와 아내에게
어린 아이에게
그리고 총사령관에게 썼다


연대장은 장병들에게 말했다
오후 5시까지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전투행동에 돌입하라
부연대장 지휘를 받으라

그는 약속지점으로 갔다


산의 지도자 김달삼은 '백두산'을 피웠다
연대장은 '러키스트라이크'를 피웠다
두 사람은
전투 중지에 합의했다


선 선무
후 토벌의 원칙에 따랐다


그가 돌아왔다
제주도의 평화를 안고 왔다
그러나 제주도에 건너온
군정청 조병옥 부장은
그를 빨갱이와 내통한 빨갱이새끼라고 대들었다
조병옥의 멱살을 잡았다
난투극
민정장관 안재홍과
국방경비대 총사령관 송호성이 말렸다
딘 소장은 구경하고 있었다


다음날 김익렬 연대장은 딘에 의해 해임되었다


제주도의 평화가 여기서 깨졌다
제주도의 학살이 여기서 시작되었다.



뭐, 회담이 깨지는데 보이지 않게 지대한 공헌을 하신 서북청년단의 노고는 잠시 접어두고라도, 저에게 이런 노력들은 참으로 인상적으로 남습니다. 성공 여부를 떠나 말입니다.


# 3. 48년 11월 이후

가뜩이나 안좋은데, 육지에서 때마침 일어난 여수-순천 반란 사건은 제주의 상황에 기름을 부어댑니다. 제주에는 계엄령이 선포되고, 신임 제주 9연대장 송요찬은 대량학살계획(program of mass slaughter)를 채택한 작전을 전개합니다. 그로부터 7년 간 제주에는 헬게이트가 열립니다.

그리고......

이후의 구구절절 설명대신 이 부분은 앞서 언급된 4.3특별법에 의해 작성된 국회차원의 진상조사 보고서의 기록만 발췌해 보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만, 그냥 보고서의 기록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 주의: 잔혹한 표현 다수 있습니다 -







- 48년 11월 13일,
- 조천면 교래리,
- 05:00

나는 아홉 살 난 아늘, 세살 딸과 함께 집에 있었습니다. 날이 막 밝아오는데, 총소리가 요란하게 났습니다.
집에 불을 붙이는 군인들에게 무조건 '살려줍서, 살려줍서' 하고 빌었습니다. 그러나 군인들은 나를 탁 밀면서 총을 쏘았습니다. 세 살 난 딸을 업은 채로 쓰러지자 아홉 살 난 아들이 '어머니' 하고 내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러자 군인들은 아들을 향해 또 한 발을 쐈습니다. '어 이 새끼는 아직도 안죽었네' 라던 군인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쟁쟁합니다. (...이하 생략)

- 증언자, 양복천


 

- 48년 11월 13일,
- 제주읍 외도리,
- 01:00

군인 세 명이 집으로 들어와 잠자던 남편을 끌어냈다. 군인들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기관총으로 쏘았다. 총알이 몸 여기저기에 박혔는데 빨리 안 죽으니까 그랬는지 칼로 목을 잘라버려 피가 낭자했다. 난 그들이 군인이 아니라 인간백정으로 본다.

- 증언자, 강응무


 

- 49년 봄(불명),
- 애월면 하귀리,
- 정오

한 처녀가 하귀지서에서 매일 전기고문을 받았어요. 사라진 오라버니(주1)를 대라는게 빌미였지요. 그녀는 고문을 못견뎌 도망쳤지만 다시 경찰에 붙잡혔지요. 경찰은 하귀국교 동녁 밖에 남녀 대한청년단을 모두 집합시킨 후 그녀를 끌고 왔습니다. 그 땐 너나 할 것 없이 대한청년단원이 돼야만 하는 시절이었습니다. 경찰은 이미 추주검이 된 그녀를 홀딱 벗긴 후, '여자니까 대한청년단 여자대원들이 나서서 철창으로 찌르라'고 명령했습니다. '찌르지 않으면 대신 너희들이 죽는다'는 협박에 여자 단장부터 차례로 찔렀습니다. 내 차례가 되기 전 그 처녀는 죽었습니다. (...이하 생략)

- 증언자, 김계순

주 1) 희생자 강조순(당시 나이 18세)의 오빠 강조행은 4.3 발발 초기에 이미 경찰에 구속.


 

- 49년 1월 16일,
- 제주읍 남읍리 빌레못굴(주1),
- 불명

토벌대가 살려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굴 속에 있던 사람들 모두 밖으로 나갔습니다. 나는 끝내 나가지 않아 살았고 밖으로 나간 이들은 굴 입구에서 바로 학살당했습니다. 강규남의 아들이나 송시영의 아들은 당시 서너 살이었는데 동네에서 소문날 정도로 예쁘고 잘난 아이들이었습니다. 토벌대는 그 아이들의 다리를 잡아 바위에 메쳐 죽였습니다. 강규남의 아내는 두어 살 난 딸을 업고 굴 속 깊이 들어갔다가 길을 잃어 굶어죽었습니다.(주2)

- 증언자, 양태병

주 1) 빌레못굴: 단일 계통의 용암굴로는 세계 최장. 현재 천연기념물 지정.
주 2) 이들의 시신은 후에 굴 탐사팀에 의해 발굴되었다.


 

- 49년 1월 17일,
- 조천면 북촌리
- 정오

군인들은 1,000여명의 주민들을 학교 운동장에 모은 뒤, 마을 전체를 불태웠다. 그리고 주민들 중 군경가족을 나오도록 해 운동장 한편에 따로 세웠다. (중략) 오후에는 주민들을 몇십명씩 끌고 나가 학교 인근 밭에서 사살하기 시작했다.(주1) 사살은 오후 5시 대대장의 중지명령이 있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애초 군은 박격포를 통해 한꺼번에 주민들을 몰살시키려 했지만, 적을 사살해본 적이 없는 신참들에게 '실전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 총살로 시행되었다.(주2)

- 증언자, 당시 경찰관 양병석


주 1) 희생자 수만 300여명, 단일 사례 중 최다.
주 2) 2000년, 경찰청에서 출간한 [제주 경찰사]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마을을 습격한 공비들은 어린이와 노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마을 남자들을 무참히 학살하거나 납치해갔다. 토벌대가 공격하자 공비들은 일부는 산으로 도망가고 일부는 마을로 숨어들어 약탈과 방화를 자행했다. 장시간 소탕전이 벌어지고 북촌리는 황폐한 마을이 되었다." 라고 기술해 물의를 빚음.

 

- 49년 2월 24일,
- 제주읍 삼양리,
- 불명

남편이 입산해 있다는 이유로  젊은 여자 한 명이 끌려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주임(주1)은 총구를 난로 속에 넣고 있더군요. 그리고는 여자를 홀딱 벗겼어요. 임신한 상태라 배와 가슴이 나와 있었습니다. 정주임은 시뻘겋게 달군 총구를 그녀의 몸 아래 속으로 쑥 밀어 넣었습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정주임은 그 짓을 하다 지서 옆 밭에서 여자의 머리에 휘발유를 뿌려 태워 죽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시신 위로 흙을 덮으라고 했는데, 아직 덜 죽어있던 상태라 흙이 들썩들썩 했습니다.

- 증언자, 고봉수

주 1) 정용철 (서북청년단 소속)


 

- 50년 8월 4일,
- 제주항,
- 21:00

50명씩 사람을 태운 차 10여대가 부두에 도착해 알몸 차림의 500여명을 내려놓았다. 이어 이들을 배에 태우고 바다로 나아갔는데, 두 시간 정도 지나 빈 배로 돌아오곤 했다.

- 증언자, 장시용(국민방위군 헌병대) 박춘택(해병대 군무관)



# 4. 현재

2000년의 제주4.3특별법 이후, 2년간의 조사 끝에 위와 같은 증언들을 담은 진상조사 보고서가 만들어 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진실에 대한 접근에는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관련자들 대부분이 증언을 거부하고 있고, 미국 또한 당시 상황에 대한 자국 정부 문서의 열람을 제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편 위에서 활약한(?) 서북청년단원들은 현재 대한민국 국가유공자들이고, 그 자손들도 여러 좋은 혜택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현재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4.3사건 관련 민간인 유공자 수: 639명)

그러다 2003년, 어느 오지랍 넓은 대통령이 공식 사과를 하기에 이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2&aid=0000016405)
무려 50여년만의 설겆이(?)인 셈인데, 제주 4.3 기념관에 가면 그의 사과연설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게 무슨 마네킹 몇 개 갖다놓고 치직 거리는 스피커에서 비명 소리 울리게 하는 상황 재현해 놓은 주제에, 교육관이니 기념관이니 하는 명패를 단 것들인데, 4.3 기념관은 정말 격이 다릅니다. 이것이 정말로 관 주도의 국가 사업이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세련되고 예술적으로 잘 꾸며져 있습니다. 제 인생을 통틀어 정부에서 뭔가 한거치곤 드물게 진심이 느껴진 몇안되는 경우였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제주 가시면 꼭 한번 가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노무현의 연설을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도에서 운영하는 제주도 안내 홈페이지에서는 기념관 목록에서 싹~ 빠져 있습니다. 그러니 알아서 찾아 가시길. -_-;)
한 정치인에 대한 호오에 관계없이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 영상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대통령이 엄숙한 얼굴로 연설하는데 뒤에서 박수치고 주먹을 머리 위로 들썩거리는 노인분들이 카메라에 잡힌 부분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박수를 치며 말없이 흐느끼는 모습을 뒤에서 카메라가 잡아주지 않았다면, 요즘 한창 활개치는 무슨무슨 어버이단이 난입한걸로 착각받을 만한 영상이었지요.


......


제 친구중에 제주 출신인 녀석이 있습니다. 봄철이 집안 제삿날이에요. 녀석 말로는, 마을 전체가 그 날에 집집마다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젊은 때에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는데, 참 기구한 운명이다 싶습니다.

그리고, 그 녀석은 자라며 동네 친구들과 놀다 시비가 붙으면 나쁜놈의 의미로 이렇게 상대를 모욕했다고 합니다.

"야 이, 산폭도같은 놈아!"


사람의 기억은 시간 속에서 엷어지지만, 이런걸 보면 꼭 그런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들에게 아직도 과거는 현재진행형이겠지요.
by deniro | 2011/03/29 17:23 | 낙서장 | 트랙백(3) | 핑백(1) | 덧글(16)
Title.무라카미 하루키의 인터뷰 (from GQ)
인터뷰를 비롯한 세간의 관심으로부터 보수적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터뷰가 월간 [GQ]의 독점판으로 실렸다.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는 선 채로 십여 페이지를 모두 읽어 버렸다.



※ 관련 링크

인터뷰 전문

잡지내 이미지 일부


하루키는 마치 지나간 옛사랑을 떠올리는 느낌을 준다.
전람회의 김동률(생각해보니 이 사람 이름도 오랜만이다)은 J's Bar 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홍대 근처에 가면 실제로 J's Bar 라는 곳이 있었다. 실제로 중국인 웨이터가 컵을 닦으며 주크 박스 노래를 틀어놓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본적이 없으니까.
90년대 초중반의 한국은 마치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한 아프리카 어느 마을을 방불케 했다. 하루키와 왕가위는 TV 드라마와 PC 통신망에서 끊임없이 소비되고 있었고 동호회의 번개모임에서는 언제나 그들에 대한 언급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속에 있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내가 읽은 그의 첫 소설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였다.

박상률의 [죽음의 한 연구]를 손에 들었을때의 생경함이랄까. 그런 느낌이었다. 입에서 절로 '아니, 뭐야 이 인간...' 이란 말이 나왔다. 언젠가 하루키가 자신의 낙서집을 통해 처음 그 소설로 군상 문학상을 수상했을때의 술회를 밝힌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 당시의 일본 출판계 사람들도 어지간히 하루키가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젊은' 수상자인 하루키는 면전에서 "상을 주는게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앞으로 잘해봐라..." 라는 투의 출판사 부장의 축하(?)를 들으며 엄청 기분이 나빠했다고 하는데 뭐... 내가 그 당시의 출판사 부장이라도 그 이상의 축사는 못해주었을 것만 같던, 그런 소설이었다.

다만 오히려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책의 후반부에 합본으로 있던 다른 단편이었다. 제목은 [1973년의 핀볼]이었다.

핀볼 게임기에 열중했던 (거의 오타꾸 수준이었던) 주인공이 오락실의 파산으로 갑작스럽게 헤어졌던 '스페이스 쉽 핀볼' 게임기를 찾는 추적을 시작한다. 그리고 허름한 지하 창고에서 마침내 찾게된 게임기. 그와 게임기의 마지막 조우.

그 순간, 아마도 이거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별말이 없고 무채색의 표정을 갖고 있는 듯한 주인공의 얼굴 표정을 나는 책을 읽으면서 입가의 주름살 하나하나 모두 보고 있는듯한 경험을 했다. 소설의 주인공, 아니 작가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 그의 소설과 글들을 찾아 읽었다. 이른바 하루키의 청춘 삼부작이라 불리는 것들 중 앞서의 두 권을 제외한 나머지인 [양을 쫓는 모험]까지 읽고, 곧바로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책들을 읽어내려갔다.

......

하루키가 언급한 것 같은데, "seek & found" 라는 표현이 아마도 맞는것 같다. 나는 그 말이 그의 전반기 시절 문학의 어떤 대략적인 형태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 하지만 마침내 찾아낸 그 것은 어떤 이유로든 다른 것으로 변해 있었다, 라는 것이 바로 seek & found 의 주제였던 것 같다.

존 포드의 [추적자]에 나오는 존 웨인의 모습이 그랬다. 십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거친 황야를 헤매이며 마침내 찾아낸 소중한 자신의 조카. 하지만 진실 혹은 현실은 주인공의 모든 노력을 허망하게 만드는 그런 것이었다. 무엇이었을까. 인생이란 것은,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어린 20대의 우울한 젊은 남자애한테는 하루키와 존 포드가 동격으로 여겨졌다.

......

고베 지진을 계기로 하루키가 곧잘 얘기하곤 했던 (그의 표현대로라면) "사회적 모랄의 형성"이 나오던 때부터 나는 그에게서 관심을 끊게 되었던것 같다. 1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아마도 나는 하루키를 '론 건맨Lone Gun Man'의 이미지에 가두어 두려고 했던 탓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어느덧 서른이 넘어 다시 만나게 된 하루키는, 여전히 반갑다. 대화 중간중간에 흐르는 낙천성이랄까, 나는 이 아저씨에게 이토록 밝은 구석이 있었는지를 그 동안 몰랐던 셈이다. 내 스스로 만들어 두었던 틀에서 빠져나온 하루키는 그런 편안한 모습의 여유가 흐르는 인상좋은 중년(사실은 노년인가.. -_-;)의 아저씨였다.
 
by 드니로 | 2007/01/19 19:14 | 낙서장 | 트랙백 | 덧글(0)
Title.얼굴; 말콤 레이놀즈

전쟁은 상대편의 승리로 끝나가고 있었다. 동료들은 죽음의 공포와 전쟁의 피로에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고, 이 세레니티 계곡에서의 전투가 그들의 마지막 싸움이 될 터였다. 후반 44분. 스코어는 3:0 정도. 이만하면 승부를 떠나 어서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길 빌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그렇듯이, 그 순간에도 말콤 레이놀즈라는 인간은 그렇지 못했다. 그저 약간의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그에게는 좋을터였다. 사람들을 추스리고, 일으켜 세우고, 어려운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낙천적 인간형.

글쎄, 이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어쩌면 극도의 현실 도피형에 가까운 인간일수도 있지만 이런 밉지 않은 몽상가들은 보는 이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곳이 비록 전쟁터일지라도.

하지만, 그 순간만은 아니었다.

아군의 지원을 기다리며 무전을 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그 동안의 노력을 헛되게 만들어버리는 철수 명령. 말은 잠깐동안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벙커 밖을 보기 위해 일어선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지는 모습들. 마치 불꽃놀이처럼 아름답게 퍼지는 적의 조명탄과 포탄들. 상대편 전함이 세레니티 계곡을 점령하기 위해 착륙하고 있었다. 바로 옆 동료가 유탄에 맞아 쓰러지는 것도 못느낀채 말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본다.

그 표정.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모든 기대가 어그러질때 그 동안 자신의 내부를 힘겹게 지탱해가던 무언가가 붕괴하는 표정.

......

드라마 [파이어플라이]의 파일럿 에피소드는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낙담한채 우주를 떠돌아 다니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알기 위해서는, 주인공 말콤 레이놀즈의 저 표정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가 자신의 조그마한 우주선에 Serenity(平靜) 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이 전쟁터에서 입고다니던 코트를 고집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아니, 어지간한 그 누구에게라도 그 순간만은 영원히 잊지못할 테니 말이지.

......

Firefly (2002; Fox TV) by Joss Whedon

                     Firefly   (by Greg Edmonson)

Take my love, take my land          내 사랑을 가져가고, 내 땅을 빼앗고,
Take me where i cannot stand.     내가 서있을 수도 없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 놓아도
I don't care, I'm still free.              난 상관 안해. 난 여전히 자유로워.
You can't take the sky from me.    내게서 저 하늘을 가져갈 수는 없을테니까.

Take me out to the black.              나를 저 암흑으로 내보내줘.
Tell them I ain't comin back.          내가 다시 돌아오지않을꺼라 말해줘.
Burn the land and boil the sea.       대지를 태워버리고, 바다를 끓어오르게 해도
You can't take the sky from me.     내게서 저 하늘만은 가져갈 수는 없을꺼야.

There's no place I can be.             내가 머물수 있는 곳이 남아있지 않지만,
Since I've found serenity,               세레니티를 찾아낸뒤부터
But you can't take the sky from me 넌 내게서 저 하늘을 가져갈 수 없어.

by 드니로 | 2006/10/02 18:29 | 얼굴 | 트랙백 | 덧글(0)
Title.마이애미 바이스
 miami vice ost - #06. auto rock
 
자정을 앞둔 한밤중의 메가박스 안은 조용했다.
예전 학생 시절엔 공습중의 지하 대피소 같은 코엑스의 정신없는 인파와 소음들이 싫어서 일부러 아침 7시나 8시 정각 조조 시간대를 노리기도 했지만, 이런 식의 좀 더 평온하고 한가한 자정이나 새벽 시간대를 생각하면 그 예전의 고생이 몹시 억울해 질 정도였다.

그래서 [마이애미 바이스]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몹시도 평온하게" 영화 자체만을 즐길 수 있었다. 액션씬이라고 할만한게 종반부에 단 한번 등장하는 이상한 외양의 영화탓은 결코 아니고, 뭐랄까... 가을 늦은 밤의 여유로움이 스크린에서 묻어나오는 듯한 느낌의 평온함이었다. 이런 느낌... 굉장히 낯설지만, 몹시 좋기도 했다. 앞으로 살면서 이런 여유를 많이 누리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지. :-)

......

영화 중반에, 콜린 파렐이 연기하는 주인공 소니 크로켓과 경찰 동료들이 마약 관련 정보원의 저택에 우르르 들이닥쳐서 그를 협박하는 장면이 있었다. 소니는 다른 동료가 그 정보원에게 윽박지르는 걸 바라보다, 문득 투명한 유리벽 너머의 바닷가를 바라본다. 아주 짧은 순간. 그는 그 순간, 자신과 방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잊은채 유리 밖의 푸른 바다를 응시한다.

"또 피지Fiji 타령인가."

그렇게 생각했다. [히트]의 닐처럼 말이지. 아니면, [콜래트럴]의 맥스처럼.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이상향을 꿈꾸는 틀리없는 "마이클 만 브랜드"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마이클 만의 주인공들처럼 불행한 이들도 없을 것이다. 머리위 가느다란 실에 칼을 매달아놓은 심정으로 왕국을 지배하는 마케도니아의 어느 왕처럼, 그들의 개인적 삶은 언제나 위태롭고 치열하다. 그리고 스스로 이 부질없는 현실에 절망하며 도피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끝없는 심연으로 추락하는 발록같은 현실에 이들의 여지없이 그 발목을 감기고 만다. 그리고 그 모습을 카메라는 아무 감정도 담지 않은채 잡는다. 카메라는 그저, 흔들리는 눈동자와 작은 손동작, 굳게 닫힌 입술 같은 것을을 짧은 시간 동안 보여준다. [리쎌웨폰] 류의 형사 버디물에 등장하는 떠벌이Verbal 파트너가 만의 영화에는 등장할 필요도, 등장해서도 안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현실은 스탠딩 개그가 허용되는 토크쇼장이 아니니까.
 
......
 
[마이애미 바이스]는 아주 잘만든 액션 영화는 아니었다. [히트]처럼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모습을 연예쇼프로 카메라처럼 바싹 붙어서 찍어낸 사실성도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콜래트럴]처럼 한밤중에 우연히 만난 두 남자의 육체적, 심리적 치킨 게임의 긴박감에 촞점을 맞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만은 등장인물들의 다가갈 수 없는 이상에 대한 상실과 자괴감으로 채우고 있었다. 소니가 형사인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마약중개상 연인 이사벨라와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난데없이 카페앞 골목길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미래는 없어' 라고 중얼거리거나, 리코가 중상을 입은 그의 연인 트루디를 보며 자신의 직업과 현실에 자괴감을 느끼거나 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나오코를 잃은 상실감과 허무에 지쳐있는 하루키 소설 속 와타나베에 오버랩 되어 보였다.
 
그런면에서 [마이애미 바이스]는 멋진 액션 영화가 '정말로' 아니었다. (훌륭했던 종반부의 총격전은 제외하고.) 깊은 상실과 허무와같은 느낌들이 잿빛 하늘과 푸른 바다의 이미지와 함께 섞여 기묘한 뒷맛을 남기는 영화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 영화를 비롯한 만의 작품들이 마초 영화라는 지적은 어쩌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만의 영화는 도시에서 하루 하루 힘겹게 작은 전투를 치르며 생존하고 있다고 "느끼는" 대다수의 남성들을 위무하는 영화였다. 그런 만의 영화를 또 한편 보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말할수 없이 좋았지만 말이지. :-)
 
by 드니로 | 2006/09/02 05:04 | 낙서장 | 트랙백 | 덧글(0)
Title.프라이데이
프라이데이
로버트 하인라인 지음, 안정희 옮김 / 시공사
나의 점수 : ★★★★

로버트 앤슨 하인라인의 몹시도 매력적인 SF.
쿠사나기 모토코의 일러스트라도 몇장 들어가 있으면 더욱 매력적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 소설. 주인공은 안드로이드로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중요한 정보를 옮겨다주는 일을 하고 있다. [코드명 J]의 조니가 맡고 있는 배달꾼의 역할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기억을 잃어버린 유약한 남자인 조니와는 다르게 이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의 안드로이드는 다른 이의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는 강인한 여성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사회는 그런 류의 안드로이드가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인간들 사이에 섞여 있는 것에 대해 슬슬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하는 곳이었다. 이름도 그렇거니와 (로빈슨 크루소... -_-;) 내용도 "하인라인답게" 시간가는 줄 모르게 줄줄 읽혔다.

아이작 아지모프의 "로봇 3원칙"을 비판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데, 하인라인의 설명을 들으면 그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이미 인간과 동등하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로봇에게 인간에 대한 보호와 순종을 강요하는 3원칙을 프로그래밍 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걸까.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들이 있는 사회라면 아마도 필연적으로 그런 문제를 겪어야 할 것이다. 얼마전 극장에 걸렸던 알렉스 프로야스의 [아이 로봇]처럼 말이지. 다행스럽게도 [프라이데이]에서 다루는 이런 고민은 언젠가 읽었던 하인라인의 또 다른 작품인 [우주의 전사들]의 경우처럼 유치하지도 않고, 오히려 소설의 세계관을 더욱 생생하게 설명해 내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하인라인도 나름대로 '진화'한 셈이지. :-)

......

SF라는 장르는 기묘한 것이, 이미 땅 속에 들어가 백골로 변해버린 노인네가 쓴 작품이라도 그 안에서 만큼은 몹시도 쿨하고 시대에 전혀 뒤쳐지지 않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동네의 모든 작품들이 그럴 리는 물론 없지만 아마도 나는 그런 이유로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듯하다. 하인라인 만세. -_-/
by 드니로 | 2006/04/29 19:54 | 낙서장 | 트랙백 | 덧글(0)
Title.망각
한밤중이었다. 산 속은 적막했고, 가끔씩 들리는 풀벌레 소리와 하늘 위의 밝은 달빛만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산을 오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뛰었지만, 힘이 빠진 나중에는 천천히 걸을 수 밖에 없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칼 한자루를 손에 쥐고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한참을 걷다 비를 만났다. 주변은 빗소리로 요란해졌고, 나는 반사적으로 다시 뛰었다. 그렇게 한참을 뛰다, 어느 황량한 벌판에 다다른 자신을 발견했다.
외로웠다. 비를 맞으며, 나를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낯선 미지의 공간을 한밤중에 걷는다는 것이 절절한 외로움으로 다가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들었다. 오블리비언을 하면서는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아졌다.

......

당신이 이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 다른 만사가 중요해지지 않게 된다.
갑자기 당신은 병이 났다며 결석을 하고, 당신의 애인이 당신을 차버리며, 그저 달콤하고 한없이 행복한 망각(오블리비언)만이 당신에게 남을 것이다.
- [PC Gamer] 리뷰
 
by 드니로 | 2006/04/26 02:57 | 낙서장 | 트랙백 | 덧글(0)
Title.적응하기
낯선 책상 앞에 앉아서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일하고 있다.

발령 하나 난 것으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건 조금 호들갑스런 태도지만, 아침에 일어날때마다 궁시렁 거리는 자신을 보면, 뭐.. 요즘의 변화가 그다지 좋은 것 같지는 않다. 잠이 놀랄만큼 줄어들었고, 스스로에 대한 생활의 여유도 만만치않게 줄었다. 뭐... 인생 뭐 있어... 라는 유들유들한 태도로 일관하다가도 이런 상황이 닥치면 놀랄만큼 침울해 지는 성격도 문제라고나 할까.

요컨대... 나란 인간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_-;
by 드니로 | 2006/04/26 02:22 | 낙서장 | 트랙백 | 덧글(0)
Title.모래의 제국

모래의 제국
로버트 W. 메리 지음, 최원기 옮김 / 김영사
나의 점수 : ★★★

미국 네오콘의 기원과 근본에 대한 책. 그들의 철학적, 사상적 배경을 서술하고 그 한계를 말한다. 몹시도 "경멸하는" 어투로.
아무래도 '네오콘'은 범지구적인 오징어포가 되려나 보다. 아무나 다씹니 원...
by 드니로 | 2006/03/31 01:32 | 낙서장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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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링, 그 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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